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by 쏭미즈 2022. 3. 10.
반응형

 

1.유럽의 전통적인 강댁국 독일

 

독일은 유럽 가운데 있는 나라로 한반도 보다 1.6배 정도 크고, 공식 이름은 독일연방공화국입니다. 인구는 약8200만명정도이며, 수도는 베를린이고 오랜 세월 유럽의 강국으로서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국기는 1832년 전제군주에 항거하는 시위시 사용한 깃발에서 유래 되었고, 검은색은 근면, 붉은색은 정열, 황금색은

명예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962년 부터 1806년 까지 844년간 서유럽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다스리며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렸습니다. 현재 독일의 모태가 되는 동프랑크 왕국의 오토 대제가 962년에 교황 요한 12세에게 황제 대관을 받으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한 여러 나라가 독립하면서 독일은 유럽 한가운데서 많은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어 자주 전쟁에 휩싸였습니다.

 

 

2. 세계를 뒤흔든 히틀러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한 편이 되어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을 상대로 싸운 전쟁이였습니다. 여러 나라가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세계대전이라고 불렸고, 독일이 아무리 강한 나라여도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건 무리였습니다. 1918년 독일은 항복을 선언했고, 1년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연합국과 협정을 맺었습니다. 연합국은 독일이 갖고 있던 많은 식민지를 빼앗아 차례로 독립을 시켰는데 그 규모가 유럽의 지도가 완전히 바뀔 정도 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전쟁 후 여러 가지 이유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경제 상황이 점점 나빠지며 나라 경제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나타나면서 독일 국민들을 부추겨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독일 사회의 불안을 틈타 등장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히틀러입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정치가 이자 나치의 총통으로 전 세계에 다시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 주자고 선전하며, 전쟁에 져서 바닥까지 떨어진 독일인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말을 하며 독일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독일 민족의 유럽 제패를 실현 한다는 명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 하였고,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함락 직전에 권총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전쟁 당시 민족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괴롭혔습니다. 강제로 따로 모아 죄수 처럼 감시하고

일을 시키고, 독일이 차지한 지역 곳곳에 강제수용소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강제수용소에 가둔 유대인들을 총으로 쏘거나 독가스를 뿌려 죽이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죽인 유대인, 장애인, 집시, 정치범 등 1.100만명이나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00만 명이 희생 당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려 주는 안네의 일기는 열네살 소녀가 쓴 일기로 지금 까지도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은 자신들이 국가적으로 저지른 죄를 철저히 반성하면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죄를 저질렀는지 기억해야 한다면서 곳곳에 기념관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는 인류 역사에 비극을 몰고 오는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면서 말입니다. 

 

 

3. 독일의 분단과 재통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연합국이던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네 나라의 통치를 받게 되었는데,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전 세계가 냉전시대 였습니다. 결국 소련이 차지한 동독은 공산주의 체제가 되었고, 미국의 영향을 받은 서독은 공산주의가 더 이상 서쪽으로 퍼지지 못하게 막는 방어 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은 그렇게 동서로 나뉜 경계문이 되었습니다. 서독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지만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동독은 경제 발달이 느려 동쪽 사람들은 더 잘 사는 서쪽으로 옮겨 가길 원했습니다. 1961년, 동독은 사람들이 서독으로 넘어가는 걸 막으려고 베를린 경계에 긴 장벽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서독과 동독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문인

베를린 장벽입니다.

1989년 11월 9일  시민의 요구에 못이겨 동독 정부는 자유로운 서독 여행을 허락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는데 발표한 정부 대변인이 언제 부터 여행을 할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즉시" 라고 답을 했고, 전 세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기사가 전해 지면서 수많은 동독 시민들은 그 말을 '오늘 당장' 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망치를 들고 모여 들었고, 장벽을 지키는 군인들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과 몇 가지 실수라는 우연이 겹쳐서 정말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1990년 10월 독일은 다시 통일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통일이 되었기 때문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자유와

통일을 바라는 민족에게 그보다 중요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독인 국민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