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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동서양 문화의 중심 터키

by 쏭미즈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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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터키의 역사

터키의 정식이름은 터키 공화국 입니다. 국토 크기는 한반도의 3배가 넘고, 지리적으로 폭이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두고 이란, 이라크가 있는 서남 아시아와 불가리아, 그리스가 있는 남유럽 모두에 걸쳐 있는 나라입니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 이고 터키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 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다수의 공장이 위치하고 각종 농산물의 집산지 이기도 합니다.

터키의 국기는 '달과 별' 이라는 뜻의 '아이 일디즈' 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세가 비잔티움의

성벽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밖에 1398년의 코소보전투가 끝난 후 피바다 속에 나타난 신비로운 달과 별을 가리킨다는 등의 설이 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 양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리스로마 시대 부터 이어지는 서양 문화와 아시아 문화가 섞여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때는 유럽을 위협한 대제국인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한민족의 역사인 한국과는 다르게 터키는 땅을 중심으로 여러 민족과 문화가 바뀌어 왔습니다.

터키 대부분의 영토를 차지하는 아시아 대륙쪽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는데 터키에서 발견 된 차탈회위크 유적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집단생활 주거지였습니다. 그 이후 터키 땅에 머물던 히타이트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시기에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단단한 철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문명이였습니다.

이웃 나라들이 청동기를 사용할 때 철기를 만드는 법을 익힌 히타이트는 주변 나라를 위협하는 강력한 나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 동서양의 무역이 만나는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아시아와 유럽의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바다와 닿아 있기 때문에 해상 무역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스탄불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슬람교와 기독교 문명이 뒤섞이고, 동양과 서양의 문물 교류가 일어난 곳이어서 매우 번성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국제 침대 회사에서 운영한 호화 기차 노선이였습니다. 파리에서 출발해 유럽의 여러 도시를 거쳐 이스탄불에서 멈추는 노선이 였는데, 유럽에서 아시아로 갈 수 있는데다가 기차도 화려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 애거사크리스티는 이스탄불과 파리를 오가는 이 열차를 배경으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라는 유명한 추리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스탄불에 가면 꼭 가야 하는 곳 중에 하나가 카파르 차르시라는 시장입니다. 원래는 중국 당나라 장안에서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이었는데 규모를 더 넓히기 위해 1455년 부터 시장을 아치형의 통로 형태로 만들고 지붕을 설치했습니다. 그래서 '지붕이 덮인 시장' 이라는 의미의 카파르 차르시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터키에서 파는 거의 모든게 있어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3. 아타튀르크와 독립전쟁

아시아와 유럽 일대를 차지했던 오스만 제국은 19세기 들어서 엄청 힘이 약해졌습니다. 그리스와 이집트는 독립했고,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제 국이 독일 편을 들었다 전쟁에 진 후, 연합군은 넓은 오스만 제국을 잘게 쪼개려 했습니다. 1918년 프랑스의 군대가 이스탄불을 점령했고, 몇 달 동안 연합국의 여러 나라가 여러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심지어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차지하려고 연합국이 서로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아나톨리아 전 지역에서 저항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민병대가 조직되어 군사 활동에 나섰고, 1919년 5월 15일에 그리스가 이즈미르라는 도시를 점령한 뒤에 저항군의 독립 운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나톨리아의 남쪽은 영국 전함이 거의 차지했고, 서부 아나톨리아의 남쪽은 영국 전함이 거의 차지했고, 서부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다투고 있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저항 세력은 앙카라에서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스타파 케말이 크게 활약했습니다.

무스타파 케말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크게 활약한 오스만 제국의 장군으로 오스만 제국이 무너진 뒤에는 독립전쟁을 이끌었고, 연합국과 로잔 조약을 맺어 현재의 터키 영토를 인정 받았습니다. 터키인들의 영웅인 케말 장군은 터키의 첫 번째 대통령입니다. 그는 술탄 제도를 없애고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 앙카라를 수도로 정했습니다.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제국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케말 대통령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 했고, 이슬람 전통 복장을 입는 법도 없애고, 남녀를 같이 교육받게 했고, 여성에게 선거권도 주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터키에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도록 노력했습니다.

터키 국회는 그에게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터키에서 아타튀르크라는 성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단 한사람 뿐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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