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mbc
1876년 — 김구의 탄생
김구 선생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이름은 김창암, 이후 김창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집안에서 태어나 신분 차별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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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 과거시험에 도전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과거시험에 도전했지만, 시험장의 부정부패를 경험합니다. 이를 통해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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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의 만남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동학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합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김구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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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 치하포 사건과 투옥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살해합니다. 이후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형 집행이 정지되고, 결국 감옥을 탈출합니다. 이 사건은 오늘날에도 살해된 일본인의 신원과 사건의 성격 등을 두고 역사적 논의가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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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계몽운동
나라를 지키려면 국민이 배우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 교육과 계몽운동에 힘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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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 중국 상하이로 🇨🇳
3·1운동 이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합니다. 처음에는 임시정부의 경호를 담당했고 이후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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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 한인애국단 조직
독립운동이 어려움에 빠지자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아는 두 독립운동가가 등장합니다.

이봉창 의사 → 1932년 일본 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실행합니다.

윤봉길 의사 → 같은 해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집니다.
특히 윤봉길 의거는 중국 사회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다시 주목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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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추적과 피신 생활
윤봉길 의거 이후 일본의 추적이 거세지면서 김구는 상하이를 떠나 자싱(가흥) 등 중국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계속합니다. 〈발품史〉에서도 출연진이 이곳들을 직접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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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 한국광복군 창설
충칭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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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 광복 🇰🇷
마침내 일본이 패망하면서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습니다. 김구는 오랜 중국 망명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김구에게는 또 다른 걱정이 생깁니다.
바로 남과 북이 나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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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나라를 위해 노력
김구는 남한과 북한에 각각 별도의 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1948년에는 평양을 방문하는 등 하나의 통일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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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 서거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격을 받아 72세(만 72세)에 서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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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가 꿈꾸었던 나라
김구 선생을 이해할 때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구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강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발품史〉의 내용을 한 흐름으로 연결하면,
신분 차별을 겪은 소년 → 동학을 통해 평등을 배움 → 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에 헌신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끄는 지도자가 됨 → 광복 후에는 분단을 막고 통일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 → 문화의 힘으로 세계에 기여하는 나라를 꿈꿈
이라고 정리할 수 있어요.
2026년은 김구 선생이 태어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라서 MBC가 〈발품史〉를 특집으로 제작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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